지난 달 교통사고를 당한 동생을 위해 급하게 혈액을 구한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습니다.
많은 누리꾼들이 혈액을 보내며 다행히 생명을 살렸습니다.
혈액이 부족해 이런 '지정헌혈'을 해야하는 환자 가족이 늘고 있는데,
만성 혈액 부족 상황, '다시 간다' 우현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늦은 밤 도로 2차선을 달리고 있는 승용차.
그런데 SUV가 뒤에서 갑자기 달려오더니, 좌회전을 시도하던 승용차를 그대로 들이받습니다.
사고를 낸 SUV 운전자는 음주 상태였고, 승용차 운전자 권모 씨는 중상을 당해 병원에 이송됐습니다.
[권민정 / 권모 씨 누나]
"장기들도 많이 파열돼서 출혈이 있었고 수혈이 시급할 거 같다."
병원측은 수술도중 가족들에게, 혈액이 모자라니 '지정헌혈'로 헌혈자들을 직접 구하라고 안내했습니다.
[권민정 / 권모 씨 누나]
"혈압이 50~60 이라고… 지정 헌혈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 동생은 그냥 부족해서 죽는 건가…"
권 씨의 누나는 즉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혈액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고, 기적처럼 도착한 혈액들을 수혈받은 권씨는 건강을 회복중입니다.
[권민정 / 권모 씨 누나]
"혈액 32팩 정도 수혈했다고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스러워요."
'지정헌혈'제도의 취지는 희귀혈액이 부족한 응급 상황에 대비하자는 것인데, 최근 혈액 공급난이 계속되면서 일반혈액에 대한 SOS글도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 교통사고를 당한 제주대 학생의 아버지가 SNS에 올린 간절한 호소에 100 명 넘게 지정헌혈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병원들도 자신들의 혈액 보유량을 유지하려고, 수술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에게 지정헌혈을 권유하기도 합니다.
[○○병원 관계자]
"50유닛 보유하고 있다가. 4월 20일 이후는 반 정도 밖에 없는데 (큰 수술 땐) 재고된 피를 많이 소모하니까"
이런 상황들때문에 지난해 지정헌혈은 7만 여건으로, 2019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일반 헌혈은 줄고 있습니다.
헌혈카페 대기실은 텅 비었고, 침대 10개 중 2개에서만 헌혈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송주현 / 한마음혈액원 간호사]
"거의 달에 200~300명이 줄었다고 보시면 되거든요. 지금은 지정헌혈 아니면 돌아가기 힘든 상황이에요."
실제로 지난해 2백43만 건으로 2019년에 비해 17만 8천 건 줄었습니다.
일반 헌혈이 줄고, 지정 헌혈이 늘어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지정헌혈로 혈액이 특정환자나 특정병원에 몰리게 되면, 다른 환자나 병원은 상대적으로 더욱 혈액을 구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박종훈 /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장]
"혈액까지도 가족들이 신경을 써야된다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이에요. 상당히 문제가 있는 거죠."
[엄태현 / 일산백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지정헌혈 하면 현혈자가 일반 헌혈을 못하는 거죠. 두 달 동안은. 급한대로 당겨 쓰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중에 그 여파는 남는 거죠."
대한적십자사는 '임시방편'적 수단인 지정헌혈이 증가하자, 따로 관리할 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김대성 / 대한적십자사 수급관리팀]
"(환자가) 지정헌혈 등록을 할 때 며칠까지 (혈액) 몇 개 이런 정보가 같이 들어가서 저희들한테는 5개를 요구하는데 4개째인지 확인이 될 수 있어요."
또 일반헌혈을 지속적으로 장려해 나간다는 방침입니다.
[권민정 / 권모 씨 누나]
"저는 그래도 젊은 사람이고 SNS나 사람 소통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정말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장애인 분들이 그랬다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다시간다' 우현기입니다.
whk@donga.com
PD : 윤순용
작가 : 김예솔
그래픽 : 유건수 박정재 윤승희
자료출처 : 강기윤 의원실